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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가장 작은 마음이다.
티끌보다 더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작디 작은마음이 마음이다.
마음은 가장 큰 마음이다.
끝간데도 없고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크디 큰마음이 마음이다.
마음은 하나밖에 없는 마음이다.
온 우주를 다뒤져도 같은걸 찾을 수 없는 단 하나밖에 없는 마음이다.
마음은 수없이 많은 마음이다.
이 세상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마음이 마음이다.
마음은 한 가운데 있는 마음이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한복판에 자리잡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마음이다.
마음은 자유스러운 마음이다.
어느 것에 메이지 않고, 누구도 규정지을 수 없는 그런 마음이 마음이다.
김상일은 그의 책 사상에서 은 다섯 가지 사전적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그 다섯 가지는



이고 이 밖에도 무려 22가지 의미가 이란 한 글자에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또한 나의 스승이신 김건 선생님은
 
우리민족은 원래 다양성 속에서 동일성을 인식하며, 단일성 속에서 다수성을 인식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우리민족이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 말에서 뚜렷이 들어 난다. 같은 말로 정반대의 뜻도 함께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개념을 내포하는 과 같은 말은 다른 민족의 말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럼 우리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의 많은 뜻을 분석 정리해 보기로 하자.

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이란 말은 수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다. 한글자가 이렇게 많은 뜻을 품고 있는 것만 해도 신기한 일인데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글자 속에는 서로가 대비되는 개념들까지도 함께 담아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란 말 속에 담겨있는 有와 無, 그리고 one과 many의 문제이다. 이 有와 無 그리고 one과 many의 문제는 서양철학이나 인도의 불교, 중국의 유교 등에서 풀어 보려고 노력했던 인간 최대의 과제이다.
서양인들은 이성을 바탕으로 사물을 해석하려고 들었기 때문에 항상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일반논리를 발전시켰다. 서양철학은 有와 無, one과 many를 양극화(Polarization)시켜 놓고 대립관계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 둘의 관계를 Both/and나 Either/or의 관계로만 보게된다.
동양에서는 有와 無를 대립관계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有無와 상대되는 개념은 非有, 非無라고 본 것이다. 인도인들은 무의식을 바탕으로 현상을 해석하려들었기 때문에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색즉시공, 공즉시색)”라는 역설의 논리를 만들었다. 유교에서는 有와 無를 상대적으로 보거나 같다고 보기보다는 그 중간의 길(중용)을 찾았다.
사상은 이런 발상들을 어느 것 하나도 부정하지 않는다. “있는게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해도 옳고 “있는게 없고 없는 것이 있다”고 해도 옳다. 그 두 가지가 다 옳은데 그 중간을 택하는 것이야 그를 수가 없지 않는가? 그러나 사상은 이 모두를 포함하고 이를 뛰어 넘는다. 이처럼 모든 논리를 긍정하면서도 그 논리에 구속받지 않고 그것이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보는데에 사상의 위대성이 있다.
東洋에서는 현상계를 理와 氣로 나누어 놓고 理氣一元論, 理氣二元論 등으로 끊임없는 논쟁을 벌려 왔었다. 이 끝없는 논쟁을 金 凡夫先生께서 氣一元論으로 분명하게 정리하신 것도 바로 과 통하는 맥락이며, 최제우先生의 [其然不然]의 사상 즉, [모든 것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데 그것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바뀌어진다]는 말도 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말이다.
이규호는 그의 책 [말의 힘]에서 “사람은 말을 사용할 줄 알기 때문에 생각을 할 수 있고, 이해의 세계를 형성하며, 자아의 실체를 창조할 수가 있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말이 꼭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은 말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이덱거(Heidegger)가 말을 존재의 집(das Haus des Seins)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근거로 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 조상들이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부터 이라는 말을 사용했었다는 것은 그만한 생각 폭을 가지고 계셨다는 말이고, 그 생각의 폭은 이라는 말을 통해서 오늘까지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더욱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이라는 단어는 어떤 종류의 수식어도 사용을 거부한다. 예를 들어서 길(道)이라는 단어도 처럼 외글자로 만들어진 단어이지만, 길은 수많은 수식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는 격이 다른 말이다. 큰 길, 좁은 길, 골목 길, 먼 길, 가까운 길, 오솔길.... 등등 어떤 수식어가 붙었느냐?에 따라서 길의 뜻이 달라진다.
은 어떤 수식어로도 그 뜻을 구속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어떤 개념도 이라는 뜻 속에는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는 단어이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다 감싸고 있는 크디큰 하늘이다. 은 사람이다.
우주공간에서 보면 티끌보다도 더욱 작은 사람이다. 이렇게 작디 작은 사람이 을 통해서 하늘에 이를 수가 있고, 을 통해서 사람은 하늘이 될 수가 있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출세나 성공이나 부자가 되는 것 따위를 생의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다운 사람, 즉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생의 과제이었다.
마음을 가지려면 우선




이 셋이 각각 다른 셋이 아니라 하나이며 하나가 바로 셋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처럼 우리의 선조들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도(道)라고 생각했으며 도를 닦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종교라고 생각했다. 신 앞에 무릎을 꿇고 복을 빌거나 화를 면하게 해달라고 비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 작디 작은 한 사람이 우주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수 있는 크나큰 한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들의 종교였다. 때문에 우리들의 종교는 종교이면서 사상이고, 철학이며, 우리들의 삶 그 자체이었다. 이런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에 대한 대답도 명쾌하다.



우리는 으로 뿌리를 삼고 큰 일을 하기 위한 일꾼들을 길러내기 위해서 만남의 터를 마련했다. 만남이란 나와 너를 넘어서서 우리가 되는 것이다. 부디 이 터가 잘 어우러져서 우리 모두가 쑥쑥 자라나서 민족통일에 한 몫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빈다.

知雲 柳 東 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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